지옥과 나 사이 겨우 한 뼘. [존 오브 인터레스트] <그저 만나는 영화 ④>
- 이주형
- 2024-05-28 18:3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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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지옥도로 알려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눈을 돌려 인근에 거주하는 화목한 가족들의 모습을 표현해 잔혹성을 배가시킨다/출처: TMDB
최근 루돌프 회스(크리스티안 프리델 역) 가족에게는 고민이 생겼다. 루돌프 회스가 다른 곳으로 전근을 가게 되어 이사를 가야 하는데, 다른 가족들은 평온하고 화목한 집에서 떠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원에는 장미와 달리아 등 아름다운 꽃이 피었고, 호숫가에 놀러가 소풍을 즐기는 일상을 그만두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가족에게 헌신하는 성실하고 다정한 아버지이자 나치 장교인 루돌프 회스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유대인 학살이라는 참혹한 비극이 발생한 아우슈비츠 수용소 인근 가족의 삶을 그리는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가 내달 5일 개봉한다. 다수의 뮤직비디오 연출 및 영화 [언더 더 스킨(Under the Skin, 2013)] 으로 이름을 알린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의 신작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기존 알려진 잔혹한 학살극이 아닌 화목한 가족의 모습을 표현해 비극성을 강조한다.
영화는 시작 후 2~3분 동안 검은 화면에 알 수 없는 소리가 지속되는데, 영화는 시각과 동시에 청각적 요소를 통해 이미지에 대한 잔혹성을 표현한다. 화목한 가족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한편, 다른 방향에서는 고함과 비명, 총 소리가 함께 들린다. 한 뼘 거리에 비극을 두고 회스의 가족과 친구들은 그저 즐거워할 뿐이다. 이 영화에서는 감금되어 고통받는 유대인의 모습이 단 한 컷 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는 관객에게 잔혹한 음향과 화목한 가족의 이미지의 기괴한 역설로 뒤틀린 현실을 보여준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이러한 역설을 표현하기 위해 연출에 다양한 공을 들였다. 회스 가족의 집에 CCTV를 단 듯 초소형 카메라를 배치해 마치 누군가의 평범한 일상을 엿보는 듯한 느낌을 전달해 현실에 대한 비극성을 강화한다. 이에 대해 글레이저 감독은 "학살을 저지르는 사람들의 평범함을 표현해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싶었다"는 의도를 밝혔다.
영화에서 회스의 아내 헤드비히(산드라 휠러 역)는 그러한 현실을 가리고자 온갖 꽃과 농작물로 정원을 만들고 수영장을 만들어 아이들이 행복한 하루를 보낼 수 있게 최선을 다한다. 영화 중간 그녀의 대사인 "수용소를 가리기 위해 포도를 잔뜩 심었어요."나 "그 이는 내가 아우슈비츠의 여왕이래." 라는 대사는 지옥도와 한 뼘 밖에 떨어져있지 않으면서 단 한번도 쳐다보지 않는 악의 평범성을 상징한다.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은 영화 제작을 위해 10년에 걸쳐 섬세한 악의 연대기를 분석했다. 실존 인물인 회스 가족의 일화, 정원, 그들이 벌인 비극적인 행동을 모두 거침 없이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쉰들러 리스트' 이후 최고의 홀로코스트 영화"라는 극찬을 보내기도 했으머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금세기에 있어 가장 필요한 영화"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실제 영화는 '쉰들러 리스트' 이후로 아우슈비츠에서 촬영한 두 번째 영화가 되었으며, 그렇기에 악의 평범성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
이에 회답하듯 영화는 제76회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장편국제영화상과 음향상을 수상해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지옥도에서 한 뼘 밖에 떨어지지 않은 현실에서 사는 평화롭게 사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긴 시간이 지나도 차별과 혐오에 찌들어 있는 현대 사회의 모습에 일침을 가한다. 6월 5일 개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