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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은 우리에게 다양한 기호와 의미로 다가오고 있다. 누군가에겐 생활의 지혜를 제공하는 삶의 터전으로 여겨질 것이고, 지켜야 할 자연으로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그저 올라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 중에는 산을 깨달음에 대상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거센 경사와 높은 바위를 하나씩 오르며 마침내 정상에 도달하면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눈앞에 펼쳐진 푸르른 자연에 대한 아름다움과 아래에서 보지 못한 풍경에 마치 나아갈 이상향을 보여주는 듯하기 때문이다.

 

산과 함께, 나를 만든 세계

[제21회 이동훈 미술상] 수상자인 정철 작가는 작품의 주요 주제인 '산'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가보지 못한 이상향"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산을 넘었을 때 다른 이상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기대감을 주기 때문이라고 밝혔는데, 동시에 유년 시절을 언급하며 '산'이라는 예술세계가 자신에게 형성되었던 계기를 밝혔다. 정철 작가는 어릴 적 돈을 벌기 위해 상경한 부모님 대신 할머니와 함께 산 아랫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회고했다. 작가가 초등학교 4학년일 때 전기가 처음 들어왔을 정도로 시골 마을이었는데, 당시 작가는 이때를 외로움과 더불어 사랑받고 싶은 욕구를 많이 느낀 시기라고 말했다. 유년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가는 산에 대해 "어머니 같은 존재이기도 하고, 품어주고 태어나고 고독하게 하는" 예술적 피사체라고 밝혔다.

 또한, 작가는 자신의 예술적 세계를 만들어준 경험과 스승들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고등학교 2학년 당시 우연히 방문한 전시회에서 동양화 한 점을 보고 예술적인 영감을 느꼈으며 주변이 파스텔색으로 보이는 느낌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예술을 전공하는 중에도 젊은 날에 만났던 스승인 김호득, 이왈종 화백에게 노력과 끈기, 마음의 폭을 넓히는 법을 배웠다고 밝혔다.

 

대지에서 고요로, 나를 찾아가는 길

 정철 작가는 작품세계를 이루는 철학과 사유를 작품으로 완성한 배경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모든 그림 속 '대지'와 '고요'를 품었다"라고 밝혔다. 그림을 시작하며 대지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일들에 대해 그 안의 고요가 있는데, 그것을 사유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을 찾아가는 작업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전의 [산] 작품을 작업할 때는 우주 속 아주 작은 '나'를 통해 '세계' 속에 '나'의 모습을 찾았지만, 지금은 그 반대로 독립된 '나'의 모습을 통해 고요를 찾을 수 있고 이를 통해 우주를 찾을 수 있다는 철학을 밝혔다.

 정철 작가의 작품에는 아주 세밀하고 작은 붓질이 수천 번 들어가는데, 그의 작업은 작은 붓질로 거대한 '산'을 만들어내는 마치 등반가 같은 것이었다 이에 대해 작가는 시대가 바뀌어 더 편하게 그림을 그려낼 수도 있지만, ‘산’이라는 거대하고 무거운 대상을 쉽게 그리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강한 신념을 밝혔다. 그 무게와 깊이를 작은 붓질을 통해 표현하기에 나를 찾는 길로 향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정철 작가의 작품인 [산]에는 화려한 색채가 돋보이는데, 작가는 이에 대해 색채에 자신이 없어 흑백에 갇혀있는 모습을 깨고 싶었다는 의도를 밝혔다. 창작 과정에 대해 작가는 색채가 흑백이 가진 모노톤과는 다른 감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예술적 세계를 완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작가가 생소한 재료인 아크릴 과슈 물감으로 창작을 하는 것도 이와 비슷한 이유인데, 유화를 그리는데 사용되는 일반 아크릴 물감과는 달리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에겐 캔버스에 잘 적응하며 분채처럼 가슬가슬하며 선명한 효과를 주기에 해당 재료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예술가로서 나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

 이어 정철 작가는 이번 전시에 출품한 우주의 한 부분 속 자신과 현재 자신의 상황을 표현한 작품에 대한 말을 이어나갔다. 이제는 동화같이 느껴질 어린 시절, 크게만 느껴졌던 산 아랫마을에서 밭을 갈던 조부모님, 아이들과 뛰어 놀았던 기억 등 당시에는 거대했고 끝을 알 수 없었던 우주 같은 세상을 담아냈다. 또한, 작가의 그림 중에는 큰 산이 섬처럼 물에 떠서 반영을 만들어내는 듯한 그림이 많은데, 작가는 이에 대해 섬으로 이루어진 작품의 경우 변하지 않는 우직한 모습을 나타내지만 동시에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이 느끼는 이미지를 표현한 모습이라 밝혔다. 이를 역설하듯 반영에 그려진 산에는 “이러한 모습도 있다”라고 돌아보며 나를 발견해 가는 과정을 표현한다고 밝혔다. 그림에 그려진 작은 배나 나무, 사슴 같은 대상은 거대하고 독립된 형태인 산과 달리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은 욕망을 표현하는 안타깝고 여린 마음이라 밝혔다

 

고요 속 깨달음, [구도자의 낙원]

 정철 작가는 이번 전시에 출품하는 [구도자의 낙원]에 대해 고요 속의 자신을 찾는 것이 '구도자의 길'이며 굳이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예술가 또한 구도자와 같은 길을 걷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영역을 찾아가고 자신을 돌아보며 자신을 찾아가는 길,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구도자와 같이 자신을 터득해가는 모습이 예술이라고 말했다. 이어 작가는 자신의 마음에 뜨겁게 타오르는 '불덩이'가 있다고 말했다. 그 불덩이가 자신을 지탱하며 작업을 지속하게 해주는 원동력이며 마음이 흔들리는 어려운 시기에도 옳은 길을 걸어가게 해주는 예술혼이라고 말했다.

 정철 작가는 작품을 소개하며 관람객들에게 산이라는 작품 속 고요한 침묵 속 꿈틀거림을 느껴보길 기대했다. 산에는 고요하지만 엄청난 꿈틀거림이 있으며 작품을 통해 고요가 끝, 죽음이 아닌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보길 권했다.

 

정철 작가에게 산은 자신을 돌아보는 하나의 세계로 느껴진다. 이는 최근 여유 없이 무조건 앞으로만 나아가는 현대인에 경종을 울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번 [구도자의 낙원]은 언제든지 변하지 않는 푸르름으로 관람객에게 늘 그 자리에 있는 산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제공하며, 산이 주는 고요함에서 새로운 관점을 찾는 계기가 될 것이다.